오타니 쇼헤이와 애런 저지, 한 시대의 기준을 세우다

202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의 정규시즌 MVP가 공개되었다. 결과는 작년과 동일했다.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와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가 그 주인공이다. 100년이 넘는 MLB MVP 역사에서 두 선수가 나란히 2년 연속 수상을 한 것은 역대 최초의 일, 게다가 기록마저 파격적이니 바다 너머 우리나라 야구팬들에게도 익숙한 인물들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라이벌리가 종목의 흥행과 서로의 기량 발전에도 선순환을 유도하듯, 두 선수의 기록은 휴지기 없이 볼드체를 추가했다. 통산 3번째 MVP를 수상한 애런 저지는 AL 한 시즌 최다 홈런(2022년 62개), 우타자 한 시즌 역대 최고 wRC+(2024년 220) 등 역사상 최고의 우타자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여기에 양키스의 공식 주장이자 높은 사회 공헌도로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까지 받으며 타석 밖에서의 인간으로서도 멋진 인품을 보여줬다.


오타니 쇼헤이의 보법도 차원이 달랐다. 투타 겸업을 재가동하며 통산 4번째 시즌 MVP를 수상한 동시에 다저스 이적 후 연속 시즌 MVP 수상, 2년 연속 시즌 MVP 및 월드 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며 우승 경력도 화려히 추가했다. 오타니가 처음 MVP를 수상했던 2021년 이후 3년 간의 투타 겸업 실적과 작년에 달성한 50홈런-50도루 등 그가 빚어낸 최초의 산물을 모두 작성하는 건 손이 아플 정도다.



쉽게 말해, 우리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우타자와 유일무이한 투타 겸업의 유니콘을 동시대에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행운이라면 행운이지만, 같이 경쟁하는 타자들에게는 불행이 아닐 수 없다. 2021년 오타니의 기량 만개와 2022년 저지의 최전성기 구간 시작으로 온갖 수상이 이 둘에게 이어졌기 때문. 2021년부터 5시즌 간 두 명이 MVP 7개를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최고의 공격력을 지닌 타자에게 수여하는 행크 애런 상 6개, ALL-MLB 팀 선정 13회(오타니는 투수로 3회/타자로 5회 선정), 실버 슬러거 8개를 쓸어갔다. 여기다 오타니는 최고의 지명타자에게 수여하는 에드가 마르티네즈 상까지 5년 연속 수상 중이니, 웬만한 파워 히터들은 연속 수상은커녕 수상 한 번 노리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상황이다. 게다가 AL에 있던 오타니가 지난해 NL로 넘어오면서 인간계 최강을 논하던 NL에도 폭탄이 떨어지고 말았다.
실제로 오타니의 만장일치 MVP 4회 수상으로 인해 48홈런-OPS 1.002의 21 게레로 주니어, 유격수로 33홈런-OPS 1.013을 기록한 23 코리 시거,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24 크리스 세일, 43홈런-38도루의 25 후안 소토가 차례대로 MVP 투표에서 1위 표 하나 없이 물러서야 했다.
저지의 경쟁자들은 그 이상이었는데, 당장 투타 겸업으로 규정이닝-규정타석을 넘긴 22 오타니를 시작으로 유격수로 30-30 및 타격왕에 오른 24 바비 위트 주니어, 포수 최초 60홈런의 25 칼 랄리를 모조리 제압했다. 더 대단한 것은 이 세 선수의 평균 WAR이 9.5를 넘겼음에도, 저지 본인은 평균 WAR 10.8을 기록하며 세이버 스탯으로도 우위를 점했다는 것. 거칠 것이 없던 지난 5년 간의 오타니에게 유일하게 MVP 2위를 안겨준 당사자가 라이벌 저지였다.


하지만 두 슈퍼스타가 마냥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본래 애슬레틱스의 지명을 받았던 저지는 이를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 3년 뒤 양키스에 지명받아 2016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그게 끝. 이후 지독한 부진으로 1할대 타율에 그쳐 아쉽게 첫 시즌을 마쳤으나, 이듬해 52홈런-114타점으로 환골탈태하며 본격적인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신인왕과 더불어 MVP 2위에 오르며 새로운 스타의 질주를 알리는 듯했던 순간, 저지를 기다린 것은 부상의 악령이었다. 무려 3년간 신체 여러 부위를 다치며 규정 타석을 넘기지 못했고, 그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것은 ‘부상만 없다면’, ‘건강한’ 저지였다.


한편 오타니의 빅리그 초반 커리어도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투타 겸업을 알리며 에인절스에 입단한 2018년 5승-22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과 함께 잠재력을 드러냈다. 그러나 오타니를 맞이한 것 역시 부상 악령. 동년 팔꿈치 수술로 인해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투수 병행을 멈춰야 했고, 투수 복귀를 알린 2020년에는 1.2이닝 7실점으로 부진한 동시에 1할 타율을 기록하며, 진지하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야구 원로들의 쓴소리도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유니콘’의 도전은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역경은 도전과 성취를 돋보이게 하는 순간이었을 뿐이었다. 잦은 부상에도 쉬지 않고 반등을 노리던 그들의 노력은 2021년 화려한 부활과 수상을 이끌었고, 마침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리빙 레전드가 되었다. 2023년 저지는 발가락 부상, 오타니는 팔꿈치 부상 재발이라는 쉼표가 있었으나, 2024년 나란히 리그 MVP를 수상하며 이 또한 일시적인 정지였음을 증명했다. 전설에게 부상과 고전이란 그의 열정과 단단한 의지를 다시금 드러내는 한때의 서사일 뿐, 커리어를 흔들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이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2021년 오타니의 첫 MVP 수상을 시작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의 수상자는 단 두 명에 불과하다. 이는 2001~04년 4년 연속으로 MVP를 수상한 배리 본즈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역사상 유일하며, 오타니 그리고 저지. 사실상 서로 유일한 맞수임을 증명한 사안이다. 2022년으로 기간을 줄이면 오타니와 저지 외 리그 MVP 수상자는 두 선수가 뛰지 않았던 NL의 폴 골드슈미트(2022년)와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2023년)밖에 없다. 그리고 두 선수의 WAR을 고려했을 때, 오타니가 일찍 NL로 넘어갔다면 그 수상마저 불투명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역사상 전례 없는 라이벌리이다. 1940년대를 달구었던 조 디마지오와 테드 윌리엄스, 1990년대 말 홈런 쇼를 보여준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 2010년대 세이버 스탯으로 주목받은 마이크 트라웃과 브라이스 하퍼 모두 이렇게 화려한 화제성과 함께 장기적으로 수상 및 1위 기록을 휩쓴 적은 없었다.게다가 둘 다 빅마켓인 뉴욕 양키스-LA 다저스 소속이니 작년 월드 시리즈가 괜히 흥행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라이벌리는 리그와 종목의 흥행을 유도한다. 2010년대를 지배한 5툴 플레이어인 마이크 트라웃의 괄목한 활약에도 불구 MLB는 우상향적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트라웃 본인의 미비한 홍보 그리고 맞서 상대할 라이벌의 부재도 주요한 원인이다. 반면 오타니와 저지가 리그를 지배하기 시작한 2020년대 들어 MLB의 시청률 및 광고와 중계권료 수익은 반등에 성공했으며, 2024년 월드 시리즈에서 그들의 맞대결이 성사되기도 했다.
이 ‘드림 매치’가 성사되자마자 흥행 기록은 모조리 새로 쓰였다. 시청률은 전년 대비 67%나 폭증하며 7년 만의 최고치(평균 1,580만 명)를 기록했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평균 5만 명 이상의 관중은 21년 만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600억 원을 넘는 TV 광고 수익부터 1,700억 원이 달하하는 포스트시즌 보너스까지, 모든 금전적 지표가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했다.


2010년대 아메리칸 리그의 MVP를 논할 때, 한 줄이면 충분했다. “마이크 트라웃이거나 아니면 트라웃보다 잘하거나.” 실제로 트라웃은 MVP를 처음 수상한 2014년을 시작으로 MVP 순위 1-2-1-4-2-1을 거두며 6년간 3번의 MVP를 휩쓸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트라웃은 만 28세 시즌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동년배인 저지와 오타니에게 시대의 헤게모니를 내줘야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의 MVP는 누가 받을까? 답은 간단하다. “애런 저지이거나, 저지보다 잘하거나.”, “오타니 쇼헤이이거나, 오타니보다 잘하거나.”. 미래에 이들이 써나갈 서사의 결말은 어떠한 내용일까. 서로에 대한 비난은 필요 없다. 우리는 그저 명예의 전당과 영구결번을 예약한 두 전설의 최전성기를 즐겁게 감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