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의 응원가, 도시의 찬가가 되다.

메이저리그 경기가 펼쳐지는 야구장에서는 경기 시작 전, 7회가 끝난 후, 경기 종료 후 등 다양한 순간 다양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는 경기 시간이 긴 야구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투구와 투구 사이의 호흡이 긴 야구의 특성상, 음악은 관객의 몰입도를 유지하고 팀과 팬을 하나로 묶는다.
리그에는 30개의 팀, 26개의 시장이 존재한다. 30개 팀은 서로 비슷하게 단순히 인기가 많은 유행가를 선택하기보다 구단의 역사와 연고지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의미 있는 노래들을 신중히 선곡한다.
이렇게 각 구단이 선택한 노래들은 단순히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 경기장을 방문한 지역 팬들을 하나로 묶고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 팀은 음악을 매개로 하여 야구장에서 지역 팬과 호흡하고 있으며, 지역 팬을 하나로 묶는 심리적 작용을 도모한다.
그렇다면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 밖에서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어떤 이야기가 그 이면에 숨어 있을까? 5개의 사례를 노래와 함께 소개하려 한다.
1. 뉴욕 양키스 : 프랭크 시나트라 ‘Theme from New York, New York’

노래하는 프랭크 시나트라 – 사진 출처 : 뉴욕 타임즈
뉴욕 양키스는 홈 경기가 승리로 마무리되면 20세기 최고의 대중 가수로 꼽히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Theme from New York, New York’을 틀어준다. 뉴욕 양키스의 찬가로서 틀어지는 이 노래는 양키스의 명성과 이 거대한 도시의 위상을 동시에 상징한다.
이 노래가 양키스의 승리를 상징하는 찬가가 된 배경에는 양키스의 구단주였던 ‘The Boss’ 조지 스타인브레너(George Steinbrenner)가 있다. 본래 이 노래는 77년 ‘마틴 스콜세이지(Martin Scorsese)’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를 위해 ‘라이자 미넬리(Liza Minnelli)’가 부른 것이 원곡이다. 이를 1980년 시나트라가 자신이 불러 앨범에 수록하여 출시한 것이 지금의 노래다.
80년 봄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맨해튼의 한 클럽을 방문했을 때 프랭크 시나트라의 녹음 버전이 흘러나왔고, 이때 스타인브레너는 이 노래가 양키스의 정신을 완벽하게 담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직접 지시하여, 80년 7월부터 양키스의 경기가 끝나면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전통이 시작됐다.
본래 패배 시에는 라이자 미넬리의 버전이, 승리 시에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버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가 패배의 상징이 된 것이 불쾌했던 미넬리의 반발에 시나트라의 버전으로 통일된 채 오늘날까지 전통은 이어졌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뉴요커들에게 경기 후 이 노래를 떼창하는 것은 단순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팀의 승패와 상관없이 하나로 뭉치는 의식이자 순간이 됐다. 팬들은 경기가 끝나면 뉴욕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담긴 이 노래를 부르며 나가는 것을 당연한 하나의 의식으로 생각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열린 홈 경기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보스턴 팬들 – 사진 출처 : 보스턴 글로브
시간이 흐르며 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구역은 경기장 밖으로 뻗어나갔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숙명의 라이벌과 같은 보스턴 레드삭스는 테러 이후 처음 치러진 홈 경기에서 충격과 슬픔에 잠긴 뉴요커들을 위로하고 지지하기 위해 튼 노래도 이 노래였을 만큼, 이 노래는 양키스 팬과 뉴요커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 노래가 됐다.
이렇게 ‘뉴욕의 찬가’로서 매 경기 울려 퍼지던 전통은 2025년에 들어서야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바로 25년부터 승리 시에만 이 노래를 틀고, 패배 시에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다른 노래를 틀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양키스의 팬들에게 이 노래는 ‘양키스를 위한 찬가’에서 ‘승리의 상징’으로 진화했다.
앞으로 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것이 팬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로 통일될 것이다. 바로 ‘양키스가 승리했다’라는 것이다.
2. 보스턴 레드삭스 : 닐 다이아몬드 ‘Sweet Caroline’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직후 열린 홈 경기에서 자신의 노래 ‘Sweet Caroline’을 부르는 닐 다이아몬드 – 사진 출처 : 타임즈 오브 이스라엘
2013년 4월 15일, 이날 보스턴 레드삭스는 홈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5대0으로 꺾었고, 2시 8분경에 경기가 종료되자 클리블랜드로 이동하기 위해 곧장 비행기에 탑승하러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40분 뒤인 2시 49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 직후임에도 예정된 원정 경기를 치르기 위해 선수단은 클리블랜드로 향했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원정 경기에 나섰다. 다행히 19일에 용의자가 체포됐고, 봉쇄령이 해제되며 2013년 4월 20일 홈 경기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날,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가 펜웨이 파크에 깜짝 등장하여 ‘Sweet Caroline’을 불렀고, 팬들은 이에 열광하며 함께 합창했다.
왜 그들은 이날 이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레드삭스의 펜웨이 파크에서는 8회 초가 끝나고 8회 말로 넘어갈 때, 닐 다이아몬드의 ‘Sweet Caroline’이 나오며, 뉴욕 시민들에게 ‘‘Theme from New York, New York’가 있다면, 보스턴 시민들에게는 ‘Sweet Caroline’이 있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이런 위상을 갖게 된 계기는 사실 우연에 기인한다. 97년 에이미 토비(Amy Tobey)는 펜웨이 파크의 음악 담당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에이미의 지인 중 한 명이 딸을 출산, 딸의 이름을 ‘캐롤라인’으로 지었는데, 이 지인을 축하하기 위한 단발성 이벤트로 이 곡을 튼 것이 이 전통의 시발점이다.
초기에는 팀이 이기고 있거나 분위기가 매우 고조된 상황에서만 사용됐으나, 2002년 홍보 담당 부사장으로 부임한 찰스 스타인버그(Charles Steinburg)가 이 노래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있음을 간파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그는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매 경기 8회 중간에 이 곡을 고정적으로 틀기로 했는데, 이는 팬들이 가사의 중간에 “So good, so good, so good!”이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양키스 X
이렇듯 이 노래를 부르는 전통은 단순히 우연한 이벤트에서 시작했지만, 보스턴의 찬가로 그 위상이 발전했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로 보스턴 지역 주민들이 슬퍼할 때는 라이벌 팀 뉴욕 양키스를 포함한 MLB 팀들이 보스턴 레드삭스와 보스턴 주민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트는 노래가 됐다. 축하를 위해 시작된 노래는 ‘Boston Strong’ 정신과 스포츠를 초월하여 인간적인 유대감을 나누는 순간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2013년 테러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는 덕아웃에 ‘Boston Strong’을 내세우며 경기에 나섰고, 팬들은 언제나 ‘Sweet Caroline’을 부르며 함께했다. 그리고 이해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했고, 테러 사건으로 의기소침하고 슬픔을 겪던 지역 팬들을 치유하고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스포츠 경기에서 틀어주던 음악이 고유의 영역을 벗어나 보스턴의 찬가로서 공동체를 치유하고 의미를 형성하며 하나로 묶었다. 야구장은 치유의 장소가 된 것이다.
3. LA 다저스 : 랜디 뉴먼 ‘I Love L.A.
83년 처음 발매된 이 노래는 처음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흔하디흔한 노래로 주목받지 못하던 이 노래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나이키의 광고 음악으로 쓰이며 LA를 상징하는 찬가가 됐다.
다만 가사를 뜯어보면 ‘과연 이 노래가 찬가인가?’ 싶은 부분이 있다. LA에 실제 존재하는 지명을 가져오며 겉보기에는 도시를 예찬하는 노래처럼 들린다. 하지만 가사를 살펴보면 뉴먼 특유의 냉소와 풍자가 가득하다. 가사 속에는 “무릎 꿇고 구걸하는 노숙자”나 “거대하고 번쩍이는 차들”, 그리고 산불의 위험을 상징하는 “산타아나 바람” 등이 언급된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찬가가 된 이유는, 다저스의 팬들은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사는 곳의 일부라며, 명암을 모두 사랑한다는 현실적인 애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팬들에게 이 노래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의 집합체이며, “We love it!”을 외칠 때 발생하는 집단적 열광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 LA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인력이 된다.
LA의 명암을 모두 끌어안은 I Love L.A.는 다저 스타디움에서 홈런이 터지거나 다저스가 승리할 때마다 울려 퍼진다. 80년대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전통은 깨지지 않았으며, 페르난도 발렌주엘라의 시대부터 오타니 쇼헤이 시대까지 모든 팬을 아우르는 노래가 됐다.
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토니 베넷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1962년 발매된 이 노래는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노래다. 발매 직후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자연스럽게 노래의 주 배경인 샌프란시스코를 연고로 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이 노래에 주목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의 공식 응원가로 경기가 승리로 끝난 뒤 팬들에 의해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곡된 ‘두 아마추어 작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이주하며 고향 샌프란시스코를 몹시 그리워하는 내용’의 노래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팀의 공식 응원가라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팬들을 하나로 묶는 노래는 단연코 이 곡이다.
이 곡은 자이언츠를 상징하는 노래로서 자이언츠의 월드시리즈와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수없이 울려 퍼졌고, 승리의 찬가가 됐지만, 아마 이 노래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1993년 4월 12일 캔들스틱 파크에서 열린 미니 콘서트였을 것이다.

자이언츠의 홈 경기에서 노래를 부르는 토니 베넷 – 사진 출처 : Medium.com
92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가뜩이나 누적된 적자에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시 당국이 야구장 신축 문제에 손 놓고 방관만 하자, 탬파-세인트피터즈버그로의 연고 이전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러나 연고 이전에 대해 내셔널리그 구단주들이 9:4로 반대하며 저지됐으며, 새로운 구단주가 팀을 인수한 뒤 잔류를 결정하며 자이언츠는 샌프란시스코에 잔류한다.
이런 위기가 있던 이후 93년 당시 자이언츠의 홈구장이던 캔들스틱 파크에서 열린 토니 베넷의 미니 콘서트에서는 토니 베넷의 이 노래가 울려퍼졌다. 이때 노래의 마지막 가사인 “When I come home to you, San Francisco, your golden sun will shine for me(샌프란시스코야, 내가 너에게 돌아갈 때면 너의 황금색 태양이 나를 비추겠지)”은 당시 모든 자이언츠 팬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승리 후 이 노래를 트는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지다 2016년 8월, 토니 베넷의 90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발전한다. 90번째 생일을 맞이한 토니 베넷은 오라클 파크를 방문하여 자이언츠 팬들과 생일을 즐겼으며, 이날 경기 이후부터 승리하면 윌리 메이스 플라자에 자이언츠의 로고와 하트가 그려진 승리 깃발을 게양하는 새로운 전통으로 발전한다. 이는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정도로 토니 베넷과 그의 노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는 의미가 남달랐다.

토니 베넷 사망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그를 추모하며 올린 사진 – 사진 출처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X
오랜 세월과 스토리가 쌓이며 이 노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팬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노래가 됐다. 비록 23년 토니 베넷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노래와 전통은 더욱 팬과 구단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하나로 묶고 있다.
5. 신시내티 레즈 : 코니 스미스 ‘Cincinnati, Ohio’
앞선 사례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신시내티 레즈의 선곡에는 연고지의 지역 특색이 아주 잘 드러난다.
가사 중 “강물이 굽이치고 메이슨-딕슨 라인(Mason-Dixon line)이 있는 곳”이라는 대목은 신시내티가 지닌 역사적, 지리적 위치를 상기시키며 남부와 북부를 잇는 관문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신시내티는 이런 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켄터키와 테네시 같은 남부 컨트리 문화가 강을 따라 유입됐다. 40~50년대 신시내티에 본사를 두었던 킹 레코즈(King Records)의 존재로 신시내티 역시 내슈빌에 이어 초기 컨트리 음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며,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컨트리 음악에 친밀감을 느끼는 역사적 배경이 됐다.
또한 컨트리 음악의 핵심 키워드는 가족, 고향, 향수, 노동자 계층이다. 신시내티는 화려한 대도시가 아닌 지역 도시이기에 구단은 항상 지역 주민과 가족 단위 팬을 겨냥한 마케팅을 해왔다. 이 노래는 가사 자체가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꿈에 그리던 고향 신시내티로 돌아온다”라는 내용이기 때문에, 야구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부르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정서를 가진 노래가 없었다.
이런 특성과 공감대를 이유로 구단주 밥 카스텔리니(Bob Castellini) 부부는 이 노래를 강력히 추천했고, 레즈는 2014년부터 홈 경기에서 이 노래를 7회 휴식 시간에 틀어주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가사는 경기장을 팬들의 정서적 안식처로 정의하며, 팬들이 따라 부르기 쉬운 선율을 지니고 있어 빠르게 구단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고, 팬들은 전광판의 가사를 보며 세대를 초월한 합창에 참여한다.
이처럼 각 구단의 선곡과 이유는 제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팀은 지역 밀착 마케팅의 하나로서 치밀한 스토리와 이유를 바탕으로 경기장에 틀 노래를 선곡한다. 이를 통해 구단은 야구가 단순히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가 아닌, 지역 사회의 일부로서 지역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지역 정체성의 일부이자 뿌리로서 인식되게 하는 것이다.
야구장에서의 음악은 지역 팬들에게 공통된 감정을 느끼게 하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게 한다. 뉴욕의 자부심, 보스턴의 연대, 샌프란시스코의 향수, LA의 스카이라인, 신시내티의 가족애 등 각 구단이 정성스럽게 고른 선율은 팬들에게 “우리는 하나다”라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고 같은 공동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경기가 끝나고 조명이 꺼진 야구장을 떠날 때, 팬들은 경기 결과만 떠올리며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 가슴 속에 도시의 정체성이 담긴 노래의 선율을 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선율을 지역 관중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다시 홈구장의 관중석을 찾는다. 구단들은 음악이 가진 위대함을 적극 활용하여 지역 팬들의 충성심을 높임과 동시에 지역 주민들과 교감하고 있다.
야구장의 응원가는 단순한 배경 음악이 아닌, 도시의 찬가로 도시의 일부가 됐다.